저자는 청소년 시절 멀리서 전파 타고 넘어오는 연변라지오방송을 들으면서 그곳에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도라지, 아리랑을 부르는 우리 동포가 산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리고 동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주가 과거의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현재의 역사라는 것이 살 떨리는 감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죽의 장막 저 쪽의 땅.
성인이 돼서도 ‘만주 열병’을 앓던 저자는 중국과 국교가 수립된 이후 1996년부터 2017년까지 마치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에 이끌린 듯 한 두 해 걸러 한 번씩 만주를 찾았다. 찾은 곳은 단동·봉성·심양·연길·용정·삼합·개산툰·이도백하·백두산·장백·연길·훈춘·도문·목단강·하얼빈·길림 등으로 조선족이 거주하는 만주(중국 동북3성) 전역을 아우른다. 『만주 일기』는 20여 년 간의 여정을 일간지 국제신문과 웹진 인저리타임에 연재한 기행문 『만주 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만주 일기』 내용 중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김하기 월북’ 사건도 들어 있다.
‘1996년 마침내 연변작가들과 부산작가들의 공동문집 『두만강 여울소리, 낙동강 갈대소리』를 발간을 했다. 그리고 출간 행사를 연길에서 거행하기로 하고 행사 겸 관광 겸 해서 부산에서 90여 명의 작가와 독자들이 연변을 방문했다. 개방 초기였던 당시, 작가들 간 교류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경계가 심했다. 설상가상 동료 작가 김하기가 술김에 두만강을 건너 월북하는 바람에 상황이 심각해졌다. 행사는 불허되고 공동문집 배포는 금지됐다. 많은 돈을 들여 힘들게 가져간 책을 그냥 쓰레기 더미에 버려야 했다. 수습한다고 혼자 남아 있었지만 그 사건은 이미 남북한과 중국의 국가 간의 문제로 커져버렸다.’
저자는 20여 년간 만주를 다녀오면서 흑백사진 같았던 그곳의 세태변화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흑백사진 같은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사이 만주 아니 중국도 많이 변했다. 특히 한국행 붐과 조선족 사회의 급격한 붕괴를 지켜봤다. 아마 조만간 만주에 만주족이 없는 것처럼 조선족, 조선 문화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만주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없는 흑백 사진 같은 그리움이 있고, 눈물이 있고 사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시간이 나면 그곳에 간다.’